2차 협상의 배경
안녕하십니까? 농림부 국제농업국장 배종하입니다. 수해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집과 재산을 다 잃어버린 분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내는지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아무리 예방을 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는 인간의 재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시는 분들과 피해주민 여러분들에게 따뜻한 손길과 정성이 아쉽습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어려움을 당한 분들을 도와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7월 10일부터 있었던 제2차 한미FTA 협상의 농업분야 논의 내용을 전해 드리고 아울러 이 자리를 빌어 세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협상 내용의 공개 문제, 그리고 ‘쌀은 처음부터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습니다만 2차 협상은 7월 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양국이 협상을 할 경우에는 각국에서 번갈아가며 개최하는 것이 관례이며 1차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기 때문에 2차는 서울에서 열린 것입니다. 앞으로 9월초 3차는 미국, 10월에 있을 4차는 한국, 12월의 5차는 다시 미국, 이런 일정으로 회의가 열립니다. 올해 다섯 차례의 협상이 예정되어 있으며 내년 일정은 아직 정해진 바 없습니다.
관세양허안은 무엇인가?
지난 1차 협상에서는 협정문이 논의되었고 당초 일정에 의하면 2차 협상에서는 관세양허안이 교환될 예정이었습니다. 관세양허안이라 함은 모든 품목의 관세인하계획을 말합니다. FTA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는 서로 정하기에 달렸습니다만 상품의 관세인하계획은 어느 FTA에서나 반드시 필수적으로 포함됩니다. 또 관세인하를 통해 실질적으로 자유무역이나 무역확대의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경쟁정책, 노동, 환경, 등 상품과 관계없는 부분은 상품 분야에 비해 직접적인 효과는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개방할 수 있는 분야, 개방할 수 없는 분야를 논하지만 WTO에서조차 서비스 협상은 아직 협상기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국가별로 차이가 많아 적극적인 개방 논의가 쉽지 않습니다. FTA에서도 개방할 수 있는 분야, 개방이 어려운 분야를 나누어서 양허하지만 서비스 시장의 개방의 깊이나 정도를 일률적인 척도를 정해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품 분야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으례 협상이라고 하면 상품 분야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FTA는 관세와 여타 무역장벽을 없앤다는 원칙 하에 협상을 하는 것이고 FTA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관세를 얼마나 빨리, 어떻게 없애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 한미FTA에서 상품을 다루는 분과는 전체 17개 분과 중 상품분과, 섬유분과, 농업분과 세 곳입니다. 상품분과에서는 농산물을 제외한 모든 상품을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섬유는 양국간에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별도로 분과를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비농산물은 상품과 섬유분과에서 다루고 농산물은 농업분과에서 다룹니다. 당연히 이 세 분과에서는 협상의 핵심이 관세인하계획입니다. 그러면 관세인하계획(관세양허안이라고도 함)의 협상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우선 각국이 나름대로 자기 상품의 관세양허안을 만들고 이를 서로 교환합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관세를 인하하면 국내 산업이 위협받거나 민감한 품목이 있기 마련이며 이런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 인하를 가급적 적게 하거나 천천히 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상대방은 이런 품목이 관세를 많이 내려야 이익이 커집니다. 그래서 관세양허안이 교환되고 나면 각국은 자기의 관심품목에 대해 관세를 더 빨리, 더 많이 내려달라는 요구를 하고 이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치열한 협상이 전개됩니다. 우리의 경우 공산품이나 섬유 분야에서는 공격적인 입장으로 강하게 개방을 주장하지만 농산물은 당연히 방어적인 입장입니다. 농산물에 있어서는 미국의 적극적인 공세가 예상되고 우리는 공세를 막아내며 버티는 양상의 협상이 전개될 것입니다.
관세양허안은 8월에 교환 예정
앞에서 밝힌 것처럼 2차 협상에서 양국이 준비한 관세양허안을 교환할 예정이었으나 미국측이 일부 분야에서 관세양허안을 만들지 못해 교환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양허안이 교환되지 못하면서 2차 협상은 다소 김이 빠진 분위기였습니다만 그대신 관세양허안의 구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품목의 성격, 민감도에 따라 관세를 바로 없애는 품목이 있는가 하면 장기간에 걸쳐 없애는 품목도 있고 아주 예외적으로는 FTA를 하더라도 관세를 없애기 어려운 품목도 있습니다. 따라서 대개 FTA에서는 즉시철폐품목, 일정기간에 걸쳐 없애는 품목, 예외품목으로 나누어지는데 일정기간에 걸쳐 없애는 품목도 민감도에 따라 기간을 달리 합니다.
대개 품목을 몇 개 그룹으로 나누어 기간을 정하는데 상품분과에서는 3년, 5년, 10년으로 나누었습니다. 따라서 상품분과에서는 모든 품목을 즉시 철폐, 3년 철폐, 5년 철폐, 10년 철폐, 기타 품목으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5년 철폐라 함은 매년 관세를 5분의 1씩 낮추어 5년 후에는 관세를 완전히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농산물에서도 양허안의 구조에 대해 논의가 있었는데 상품처럼 전체 농산물을 다섯 그룹으로 분류한다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하였으나 철폐 기간에 있어서 우리는 농산물은 공산품보다 기간이 길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공산품이나 농산물이나 비슷한 철폐기간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이 점에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현재 계획으로는 3차 협상 이전 8월 중에 양허안을 교환할 예정인데 양허안의 구조에 합의가 없음에 따라 서로 각자 입장에 따라 양허안을 작성할 계획입니다. 즉, 우리는 농산물에 있어서 공산품보다 더 긴 관세철폐기간을 적용해서 양허안을 작성합니다.
일단 8월에 교환할 최초의 양허안은 우리 입장을 최대한 살려서 보수적인 양허안을 만들 것입니다. 앞으로 협상은 주로 관세양허안을 가지고 될 것이고 협상 마지막 단계까지 가면서 양허안은 많이 고쳐지고 바뀔 것입니다. 아마 미국측은 우리 양허안을 보고 엄청나게 많은 요구를 해 올 것 같습니다. 그 요구를 우리가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 면밀히 분석하고 판단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농산물이 민감하기 때문에 상당수 품목을 예외적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될 것이고 미국은 반대고 적극적으로 모든 농산물의 관세를 없애자고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참고로 미국은 지금까지 체결한 모든 FTA에서 모든 농산물의 관세를 철폐했습니다만 유일하게 호주와 체결한 FTA에서는 설탕류와 일부 낙농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철폐하지 않는 예외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협상 내용 공개 문제
이상 2차 협상의 배경과 진행상황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는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협상 내용의 공개 문제, 쌀의 협상대상 여부 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협상 내용을 공개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는 협상 내용을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협상 내용은 언론을 통해 상세하게 보도되었으며 그 이상 더 알릴 내용도 없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협상단은 우리가 언론에 너무 많은 것을 알린다고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언론을 보면 협상 내용에 대해 보도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협상의 내용이 다 공개되면 전략적인 협상을 하기 어렵습니다.
협상에서는 전략적으로 처음에는 자기 입장과 다른 주장도 할 수 있고 또 주고받는 것이 협상이기에 협상 과정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모든 걸 다 공개해 버리면 협상은 극도로 경직될 수밖에 없고 실질적인 협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협상장에서 오고 간 내용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도 협상단이 의회가 요구할 경우에는 협상 진행상황을 보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더라도 그 자리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이루어지고 그 석상에서 논의된 내용이 전혀 언론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도 협상 내용의 공개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데 비공개, 비밀 유지가 보장된다면 이해관계자들에게 협상 내용을 알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밀이 유지되지 못한다면 협상 자체가 사실상 어려울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명분에 밀려 실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 쌀협상 국정조사에서 당시 국정조사 위원과 민간 통상전문가들에게 협상 과정에 오고 간 비밀문서들이 열람된 바 있는데 비밀이 유지되지 못하고 그 내용이 전부 언론에 공개되어 상당히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더구나 양국이 협상에서 오고 간 문서는 협상 종료 휴 3년간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내용이 일반에게 공개된다면 양국이 합의한 사항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적절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으므로 조만간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쌀은 아예 개방대상 자체가 아닌가?
끝으로 ‘쌀은 개방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GATT 조항을 근거로 ‘쌀은 아예 협상 대상이 아니다’ ‘협상대상이 아님에도 정부는 협상대상에서 제외시키겠다고 하면서 생색을 내고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결론부터 말한다면 쌀이 아예 협상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해석은 GATT 규정을 상당히 무리하게 해석한 측면이 있습니다.
2004년 쌀협상을 통해 우리는 2014년까지 관세화를 유예하고 4개국에게는 쿼타를 배정하였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FTA에서 쌀 문제를 논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쌀협상은 WTO농업협정에 따라 협상을 한 다자차원의 협상이고 FTA는 양자차원에서 WTO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을 목표로 하는 협상이니다. 쌀 문제를 FTA에서 다시 거론한다고 하더라도 여타 쌀수출국의 쿼터를 제한하지 않는 한 일부에서 주장하는 GATT 24조(FTA의 근거 규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 우리가 FTA에서 미국에 별도의 쿼타를 주는 것은 GATT 13조(수량제한의 차별 금지)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상당히 무리한 해석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쿼타를 주면 쌀협상에서 쿼타를 설정한 중국, 태국, 호주를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차별하게 되므로 GATT조에 위배된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입니다.
이 문제는 GATT 13조와 24조의 관계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GATT 규정의 구체적인 해석은 분쟁을 통해 분쟁해결기구의 판결이 나야 가능한데 지금까지 WTO 분쟁에서 이와 같은 경우에 대한 판례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유사한 판례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우리의 쌀문제와는 경우가 달라 그 판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FTA에서는 쿼타가 설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EC와 칠레의 FTA를 보면 EC가 우루과이라운드에서 국별쿼타를 설정한 품목에 대해서도 칠레에게 별도의 추가 쿼타를 주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미 체결한 FTA에서 쿼타를 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례가 많음에도 이 문제에 대해 현재까지 이의를 제기하거나 WTO분쟁이 된 사례는 없음을 볼 때 대부분의 국가가 이것이 GATT 13조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쌀에 대해서 미국에 별도의 쿼터를 주는 것은 GATT 13조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다소 자의적이고 무리한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법리적 해석으로 쌀이 협상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정부는 쌀에 대해서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는데 이는 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쌀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것이지 이 문제가 GATT 규정 상 당연히 협상에서 제외된다는 해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에 대해 국내적으로 논쟁이 있는 것 자체가 다른 쌀수출국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우려가 있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기 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소 장황한 설명이고 법리적 해석까지 보태어져 어려운 내용이 된 것 같습니다만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